신라의 왕이 서울까지 왔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가 남긴 뜻밖의 증거
― 국보 제3호가 들려주는 고대 한반도 지형의 반전
서울 한복판에서 신라 왕의 흔적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 있으신가요?
보통 신라라고 하면 경주, 또는 남부 지역을 떠올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국보 제3호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가 한강 이북까지 세력을 넓혔던 시기의 놀라운 증거를 지금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국보 제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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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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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국보 제3호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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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신라 진흥왕 21년 (56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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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비봉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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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화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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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높이 약 170cm, 너비 7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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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시기: 1816년 (조선 순조 연간), 김정희에 의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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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신라의 북방 진출과 한강 유역 확보를 보여주는 실증적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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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출처:국가유산포털) |
진흥왕, 왜 북한산에 왔을까?
신라 24대 왕 진흥왕은 신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한 군주로 유명합니다.
특히 백제, 고구려 사이에 있던 한강 유역을 확보하며
삼국의 균형을 뒤흔든 왕이었죠.
북한산에 세운 순수비는 바로 이 영토 확장의 흔적입니다.
‘순수’란 왕이 직접 정벌한 땅을 둘러보며 공적을 기록하는 의식으로,
이 비석은 신라가 한강 이북까지 세력을 넓혔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즉, 이 비는 단순한 승전 기념비가 아니라
신라 중심의 고대 한반도 지형도가 얼마나 달랐는지를 증명하는 핵심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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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위치 (출처:국가유산포털) |
조선의 학자 김정희가 다시 알린 고대의 흔적
흥미로운 점은 이 순수비가 조선 시대까지도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1816년, 김정희(추사)가 순조의 명을 받아 북한산 일대를 순찰하던 중
우연히 이 비를 발견하게 되었고, 당시엔 ‘무슨 비석인지도 모른다’며
‘북한산 신라비’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오랜 연구를 통해 진흥왕 순수비임이 밝혀졌고,
1930년대에는 비문을 정밀 판독해 신라의 북방 경계가 이 지역까지 미쳤음을 공식적으로 입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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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 이미지 (출처:국가유산포털) |
비석 하나로 바뀐 고대사 인식
비문에는 진흥왕의 업적, 군사 활동, 영토 편입, 지방 관료 임명 등이 적혀 있어
단순한 기념비를 넘어선 정치 문서의 성격을 띱니다.
게다가 이 비가 위치한 북한산 비봉은 해발 약 500m 지점으로,
당시에도 일부러 눈에 띄는 곳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 하나로 인해 학계에서는 오랫동안 통설이었던
“신라는 남쪽 국가였다”는 인식에 강력한 반론이 제기되었고,
한강이 고대 삼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지였다는 사실이 재조명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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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본 (출처:국가유산포털) |
우리가 걷는 산, 그곳에 새겨진 고대의 국가
지금도 북한산 비봉에 오르면, 산 정상 바위 위에 조용히 서 있는 순수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국보임에도 실외에 노출되어 있는 이 비는
600년 전 진흥왕이 직접 밟았을지도 모를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순수비를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지금의 서울은, 과연 누구의 땅이었을까?”
그리고 “고대 한반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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