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절터에서 발견된 유일한 비석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가 전하는 왕실과 불교의 밀착

― 말의 갈기처럼 흐르는 글씨 속, 고려의 정교한 손글씨를 만나다

비석이라 하면, 보통 딱딱하고 정형화된 글씨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천안의 한 옛 절터에서 발견된 비석 하나는
그 편견을 깨트릴 만큼 유려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비는 오랜 세월 땅속에 묻혀 있다가, 우연히 세상에 드러났고
그 안에는 왕실의 정성과 고려 불교의 흔적, 그리고 ‘갈기’처럼 흐르는 서체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입니다.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기본 정보

  • 명칭: 국보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7호)

  • 시대: 고려 현종 12년(1021년)

  • 재질: 화강암

  • 형태: 직사각형 비석, 연꽃문양의 받침대와 이수(머릿돌) 포함

  • 크기: 높이 약 242cm

  • 위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봉황리

  •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 의의: 고려 왕실이 세운 사찰의 건립 과정을 기록한 비석으로, 조형미와 서예미를 겸비한 대표 석비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출추-국가유산포털)


비문이 아닌 ‘서체’로 감동을 주는 비석

갈기비(碣記碑)는 고려 현종이 어머니 원성왕후를 기리기 위해 창건한 사찰 ‘봉선홍경사’의 창건 사실과 의미를 기록한 비석입니다.
그러나 이 비는 단순히 사찰 건립 내역을 적은 공문서형 비석이 아닙니다.
비문의 서체가 너무나도 아름다워,
‘말의 갈기처럼 흘러내리는 듯한 필체’라 하여 갈기비(碣記碑)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이 서체는 유려하면서도 기품이 있으며,
문자 자체가 회화적이면서도 구도감이 살아 있어,
오늘날에도 ‘한국 고대 서예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보호각 (출추-국가유산포털)


고려 왕실과 불교, 그 정교한 관계의 증거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고, 왕실은 각종 불사를 적극적으로 주도했습니다.
갈기비는 그런 왕실 불사의 전형적인 예로,
왕이 자신의 어머니를 추모하며 사찰을 창건하고,
그 뜻과 과정을 정교한 비문과 아름다운 서체로 새긴 유일한 기록입니다.

비문에는 사찰의 건립 이유, 시주 내용, 불사에 참여한 인물들과
그 과정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 고려 초기의 종교정책과 왕실 활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

비문 (출추-국가유산포털)


사찰은 사라졌지만, 비석은 살아남았다

‘봉선홍경사’는 오랜 세월을 지나며 소실되어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하지만 갈기비만은 우연히 땅속에서 발견되어 지금까지도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연꽃무늬를 새긴 받침석, 거북 모양의 귀면석(귀부), 그리고 용이 새겨진 이수까지
전체적으로 조형미와 상징성이 조화를 이루는 고급 석비로 손꼽힙니다.

특히, 이수에 새겨진 용은 비문의 신성함을 상징하며,
왕실의 위엄과 불법의 숭엄함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귀부 (출추-국가유산포털)


갈기처럼 흐른 비문 속에서 역사를 읽다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단지 오래된 비석이 아닙니다.
그 위에는 고려 왕실의 애틋한 감정, 불교에 대한 신심,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대 지식인들의 서예적 미감과 조형 감각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비석은 말을 하지 않지만,
갈기처럼 흐르는 글씨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잔잔한 울림을 전합니다.
그 글자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과 손끝의 떨림은
천 년 전 어느 날, 한 붓에 담겼던 진심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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