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의 글씨로 남은 스님의 삶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가 들려주는 통일신라의 마지막 이야기
― 글과 돌이 함께 만든, 스승을 위한 가장 진실한 비문
스님 한 사람의 삶이,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돌에 새겨져 읽힌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한 시대의 정신이 담긴 유산입니다.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폐사지로 남아 있는 옛 절터 한가운데에
한 비석이 조용히 세월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 비석은 낭혜화상이라는 고승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그리고 그의 제자와 당대의 명필이 함께 만든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입니다.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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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국보 보령 성주사지 낭혜화상탑비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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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통일신라 문성왕 4년(8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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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화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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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귀부(거북 받침돌) 위에 비신(비석 본체)과 이수(머릿돌)를 올린 전형적인 삼단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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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 높이 약 2.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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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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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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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고승 낭혜화상의 생애를 제자와 명필 김생의 글씨로 남긴 대표적인 승탑비
화상의 마지막을 제자가 글로 새기다
‘낭혜화상’은 통일신라 후기의 고승으로, 당시 왕실과 민간에 큰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경문왕의 왕사로도 추대되었고, 스스로를 내세우기보다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던 스승이었습니다.
그의 입적 후, 제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비문을 짓고
당대 최고 명필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생(金生)이 그 글을 비에 새기면서,
이 비석은 단지 추모비를 넘어 문학적·서예적 가치까지 겸비한 문화유산으로 남게 됩니다.
비각 (출처-국가유산포털) |
조용하지만 아름다운 형태
이 비석은 전형적인 삼단 구성(귀부-비신-이수)으로,
거북이 몸을 낮게 웅크린 듯한 귀부와, 그 위에 올려진 큼직한 비신,
그리고 이수에는 전통적인 연꽃과 용무늬가 조화롭게 새겨져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통일신라 특유의 절제된 품격이 느껴지는 석비입니다.
비문에는 낭혜화상의 출생, 수련, 가르침, 입적까지의 생애가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글의 어투는 애틋하면서도 절제되어 있어,
한 제자가 스승을 진심으로 기리는 방식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사라진 절, 남은 비석
성주사는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어 폐사지로 남아 있지만,
이 낭혜화상탑비만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탑비 옆에는 실제 낭혜화상의 사리를 모셨던 승탑도 남아 있어,
스승의 삶과 죽음을 함께 기억하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런 유적은 비석 하나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 시대의 사찰 건축, 불교 문화, 승려 사회, 왕실과의 관계까지
여러 층위의 역사와 문화가 교차하는 현장입니다.
비문 (출처-국가유산포털) |
진심은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돌에 새긴 글자는 풍화될 수 있어도,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낭혜화상탑비는 그렇게 말합니다.
“스승을 향한 제자의 마음은 천 년을 넘어 남는다”고.
우리는 그 글씨를 따라가며,
한 시대를 살았던 한 스님의 조용한 삶과,
그를 기억하려는 이들의 간절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문화재는 단지 과거를 보는 창이 아니라, 감정을 전하는 매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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