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전의 기술로 세운 수직의 예술, 원각사지 십층석탑

― 조선의 불교, 그리고 석공예의 정점을 만나다

도심 한복판, 회색 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누군가는 “이게 왜 여기에 있지?” 하고 놀랄 만큼 낯선 풍경과 마주치게 됩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안, 고요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십층석탑.
그저 오래된 탑처럼 보이지만, 이 석탑은 단지 돌을 쌓은 구조물이 아닙니다.
이곳은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불교 석탑이자,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입니다.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 기본 정보

  • 명칭: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 지정번호: 국보 제2호

  • 지정일: 1962년 12월 20일

  • 시대: 조선 세조 12년(1466년)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2가 탑골공원 내

  • 형태: 화강암 재질, 10층 규모의 다각 석탑

  • 높이: 약 12.7m

  • 건립 배경: 세조가 원각사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기 위해 건립

  • 의의: 고려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조선 석조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 탑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전경 (출처-국가유산포털)


조선의 도심 한가운데 세운 불탑

조선은 유교를 국시로 삼은 나라였지만, 불교의 영향력은 여전히 강했습니다.
특히 세조는 불교에 깊은 신심을 가졌고, 직접 대규모 사찰인 ‘원각사’를 세우며 불교 중흥에 앞장섰습니다.
이 십층석탑은 바로 그 원각사의 중심에 세운 진신사리탑, 즉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신성한 구조물이었습니다.

오늘날의 탑골공원이 바로 그 옛 원각사 터인데, 당시 원각사는 규모도 크고, 국가적 위상을 상징하는 종교 공간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놓인 이 석탑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조선 초기 불교의 이상과 권위를 응축한 결정체였습니다.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출처-국가유산포털)


높이도, 조각도 전례 없는 정밀함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높이 12.7m, 화강암을 정교하게 가공해 쌓아 올린 다층 석탑입니다.
탑신부 각 층에는 불상을 조각했고, 특히 옥개석(지붕 부분)의 곡선과 비례는 석조 건축미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각 면마다 다른 문양이 새겨져 있어, 석공들의 섬세한 기술과 예술 감각이 녹아 있습니다.

이 탑은 고려 후기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조선의 간결하고 단정한 미감을 반영하고 있어
과도기적인 조형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옥개석 (출처-국가유산포털)


부서진 탑, 잃어버린 탑의 기억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원각사는 사라지고 탑만 남았습니다.
한때는 이 석탑이 방치되고 일부 훼손되기도 했으며, 사리를 모셨던 공간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는 탑골공원 안에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지만, 이 탑이 왜 여기에 홀로 서 있는지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탑이라는 존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기도, 기억, 믿음의 결정체입니다.
이 탑이 다시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국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잊어가던 정신의 흔적을 되새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탑신부 조각 상세 (출처-국가유산포털)



오늘, 우리는 이 탑 앞에 무엇을 세울 것인가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지금도 탑골공원 한가운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복잡한 도심 속을 바쁘게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잠시 멈춰 서서 이 탑을 바라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유산의 ‘현재적 가치’일 것입니다.

국보란 단지 오래된 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과 질문을 이끄는 살아 있는 시간의 돌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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